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문단 편집) === 제4대 정통 칼리파 등극과 쿠라이시 가문의 알리 반대 운동 === > 누군가가 알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아부 바크르]]나 [[우마르]]가 칼리파로 선출되었을 때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왜 이제 와서는 당신의 선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 알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이유는 아부 바크르나 우마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있었지만, 이제 나는 자네 같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네!" 알리는 칼리파 등극 직후부터 터져나오는 반대 세력들의 반란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던 것이 우스만 시대 각종 우대를 받던 쿠라이시 부족의 세력이었다. 그들은 알리가 우스만의 중재 요청을 거절한 것은 애초부터 우스만을 암살하기 위한 계책이었다고 주장하며, 알리의 칼리파 즉위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알리의 성향상 우스만 시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은 중지될 것이 뻔했고, 그럼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세력은 우스만 시대 온갖 특혜를 누리던 쿠라이시 부족이었다. 이런 사태를 경험하며 알리는 무함마드 사망 이후 이렇게 짧은 기간내에 움마의 기강이 흐트러진 것을 탄식하며, 자신은 기강을 회복시키려 노력할 것이라 선언했다. 하지만 쿠라이시 부족은 계속해서 알리 반대 운동을 진행하며 그의 칼리파 지위를 위협하고 특히 우스만을 살해한 이들을 처형할 것을 요구했는데, 알리는 폭도들이 메디나를 장악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쿠라이시 부족은 알리의 권위를 손상하고자 더욱 적극적으로 처벌을 주장했다. 이런 난국을 타파하고자 단호하게 국면을 전환시키기로 마음먹은 알리는 이제까지의 수도 메디나에서 메소포타미아 중류의 [[쿠파]]로 천도하여 개혁을 진행했으나 이미 우스만 시대에 권력과 독점의 단맛을 본 상류층은 알리가 주장하는 초기 이슬람의 순수성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들에게 알리는 자신들의 재산과 지위를 위협하는 위험분자일 뿐이었으며, 반면 쿠라이시 부족은 알리에 맞서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정당한 수호자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